서강대 앞 신수동을 지나는 경의선 숲길은 원래 기차가 다니던 길이었다. 경의선이 땅 밑으로 들어가면서 남은 땅을 길게 이어 공원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저녁마다 걷고 뛰는 산책로가 됐다. 처음 이 길이 열렸을 때는 철길이 사라졌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늘 덜컹거리던 땅이 갑자기 잔디와 보도블록으로 덮여 버렸으니까.
그런데 공원으로 바꾸면서 철길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은 자리가 있다. 서강대 남문 근처다. 자갈 사이로 녹슨 레일 한 쌍과 나무 침목이 그대로 깔려 있고,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가 칠해진 건널목 차단기 기둥도 서 있다. 그리고 그 철로 위에 아이 둘이 있다. 청동으로 만든 아이들이다.

밤에 지나가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남자아이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한쪽 귀를 레일에 바짝 붙이고 있다. 여자아이는 그 옆에서 양팔을 쭉 펴고 레일 위에 서 있다. 둘이 무엇을 하는지 한눈에 알아봤다.
기찻길 근처에서 놀아 본 아이들이라면 다 아는 장난이다. 레일에 귀를 대면 멀리서 오는 기차 소리가 쇠를 타고 먼저 들린다는 말이 있었다. 정말 들리는지는 몰라도 일단 엎드려서 귀부터 갖다 대곤 했다. 좁은 레일 위를 걷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더 오래 안 떨어지고 걷나 겨루다 보면 팔은 저절로 비행기 날개처럼 벌어졌다. 어른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반대쪽으로 돌아가 보니 여자아이는 등에 책가방을 메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잠깐 철길로 새서 노는 중인 거다. 남자아이도 신발을 벗어 던질 기세로 다리를 뒤로 쭉 뻗고 있어서, 소리를 듣는 데 얼마나 열중했는지 보인다. 아이들 곁 나무 화분에는 노란 국화와 분홍 국화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가을밤이라 그런지 청동빛이 더 따뜻해 보였다.
이 동상이 좋은 이유는 철길이 있던 시절의 모습만 남긴 게 아니어서다. 레일과 침목, 차단기만 남겨 두었다면 그냥 옛날 시설 하나 보존한 자리로 끝났을 거다. 그런데 거기에 그 철길 옆에서 놀던 아이들을 얹어 놓으니 이곳에 사람이 살았고 기차 소리가 일상이었다는 게 함께 떠오른다. 기차는 더는 오지 않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귀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 그게 좀 뭉클했다.
바로 옆 산책로에서는 사람들이 이어폰을 끼고 달리고, 산책 나온 이들이 천천히 걸어간다. 다들 이 길이 철길이었다는 걸 알까 싶다가도, 이렇게 동상이 서 있으니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려 보게 될 것 같다. 서강대 남문 쪽을 지날 일이 있으면 잠깐 멈춰서 아이들 옆에 서 보길 권한다. 레일에 귀를 대 봐도 이제 기차 소리는 안 들리겠지만.
